[중동발 '지정학 쇼크' 리포트②] 정유·석화업계 재편 가속화..."'고부가·친환경' 중심 전환 시그널"

김유승 기자

2026-04-10 17:13:50

정유업, 다변화 중심…석화는 원료 수급난 지속
단독 NCC 고충 심화…구조 재편 ‘속도전’ 돌입
"공급 감소 통한 수급 개선 계기로 작용 가능"
"석화 정상화 대비해 구조 재편 일관 추진해야"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 해역에 정박중인 선박.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 해역에 정박중인 선박.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김유승 기자]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로 촉발된 중동발 지정학적 쇼크가 국내 에너지 산업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정유업계가 공급망 다변화로 대응에 나선 반면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빚어진 석유화학업계는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그간 지지부진했던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 개편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단순한 버티기를 넘어 2028년 이후 생존을 좌우할 ‘체질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도입 원유의 약 70%, 나프타 수입량의 65%가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 물량 대부분은 분쟁 지역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현재 정유 4사는 중동산 원유 도입 차질에 대비해 북미와 아프리카 등으로 수입선을 확대하고 있다. 홍해 및 오만을 경유하는 우회 항로 확보에도 나섰다. 멕시코 마야유, 베네수엘라 메사유, 러시아 우랄유 등은 중동산과 유사한 특질을 지닌 만큼, 정부 지원을 통한 긴급 도입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석유화학 업계의 상황은 더욱 긴박하다. 원유는 통상 한 달가량 비축분을 마련하지만, 나프타는 약 2주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설비인 나프타분해설비(NCC)는 원료 전환이 제한적이어서 수급 불안 시 대응이 쉽지 않다. 이는 에탄 기반 크래커 등 다양한 원료 포트폴리오를 확보한 글로벌 업체들과 대비되는 구조적 약점으로 꼽힌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프타를 우선 공급받을 수 있는 정유사와의 수직계열화 여부가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과 HD현대케미칼 등 통합형 업체는 나프타 수급이 비교적 원활해 가동률을 방어하고 있다. 반면 롯데케미칼·LG화학·여천NCC 등 단독 NCC 업체들은 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가동률을 낮추거나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원료 수급 부담의 격차는 결국 산업단지별 구조 개편 속도차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NCC 업체들은 과잉 공급으로 인해 잉여 물량을 낮은 가격에 수출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2019년 이후 수출 단가는 내수보다 5~10% 낮아 수익성 악화가 고착화됐다. 이에 따라 업스트림 설비를 축소해 기초 유분 생산 단가를 낮추고, 저가 제품 비중을 줄이는 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수익성 반등을 위해 단독 NCC 업체들은 생산 조절을 넘어서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롯데케미칼은 대산 NCC 가동 중단을 결정하고 이를 물적분할해 HD현대케미칼과의 합병을 추진 중이며, 여천NCC도 2·3공장 운휴를 포함한 생산능력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LG화학 역시 BPA(비스페놀A) 사업부 매각 등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유사를 보유한 업체들은 정유 부문의 이익으로 화학 부문의 손실을 일부 상쇄하며 상대적으로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급 과잉이 누적된 석유화학 산업에서 이번 사태가 오히려 공급 감소를 통한 수급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중·일과 유럽의 설비 축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공격적인 증설이 이를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석유화학 업황 개선 시점이 2028~2029년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 이전에 스페셜티 고도화와 원료 조달처 다변화를 포함한 사업 재편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기적인 수급 불안정은 비용 측면에서 부정적 악재지만, 장기적으로는 저부가가치 범용 제품에서 벗어나야 하는 사업 재편의 골든타임을 앞당기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며 “유가 불안정성이 커질수록 범용 제품 중심의 기존 포트폴리오는 한계를 드러낸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불확실성은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및 친환경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강력한 시그널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김호섭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도 “원료 조달과 원재료 측면에서 다양성 확보와 조달처 다변화를 위해 사업 재편이 필요하다”며 “사업 재편을 통해 피드스탁(원재료) 유연화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오히려 이를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 재편의 정당성과 타당성은 높아진 상황”이라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스프레드 확대와 공급량 감소 영향으로 3~4월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단기 요인으로 일부 업체들이 사업 재편을 지연하고 싶은 요인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사이클 산업 특성상 업황 반등을 기대하며 구조 개편을 미루는 경향이 반복돼 왔다”며 “코로나19 시기에도 유사한 흐름이 있었지만, 2022년 말 이후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단기간 내 업사이클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로 인해 사업 재편이 지연될 경우, 향후 업황 정상화 시점에 다시 구조 개편이 늦어지며 후회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며 “정부의 정책적 의지도 강한 만큼 단기적인 외부 충격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승 빅데이터뉴스 기자 ky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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