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서구 언론의 ‘한국 모델’과 우리 언론의 ‘세월호’

기사입력 : 2020-03-29 07: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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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운 / 충훈고등학교 교사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른 이가 쓴 칼럼을 유심히 읽어보게 된다.

읽다보면 칼럼 내용 자체보다는 칼럼을 쓴 사람이 더 흥미로울 때가 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문제의식을 지니게 된 걸까, 이 사람은 이 글을 누구 읽으라고 쓴 걸까, 이 사람은 이 글을 어떻게 읽으라고 이렇게 어렵게 쓴 걸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걸까, 자세히 뜯어본다.

내 경우에는 삶의 여러 문제를 간신히 피하거나 적당히 참아내며 살아왔기에 거대한 문제의식 보다는 자잘한 불평불만을 지니게 되었다. 이 글을 누가 읽을지도 모르고 딱히 독자를 상정하고 쓰지도 않기에 그저 나중에 내가 읽어봤을 때 수치스럽지 않을 정도로 쓴다.

본인 머릿속에서도 정리가 안 된 말을 입이나 손으로 밖에 내놓으면 멀쩡한 다른 사람 머릿속까지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기에 한 달 내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고쳐 다듬은 말을 쉽게 풀어쓰려고 노력한다. 핏대 높여 자기 생각을 떠드는 사람을 보면서 오히려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경험을 해봤기에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조곤조곤 읊조리려고 한다.

두 달 넘게 지속되던 코로나19 사태가 이제는 전 세계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고 있다. 이 와중에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진단 키트와 임상 자료를 공유해달라고 간절한 요청을 보내오고 있다. 세계 각국의 외신들은 ‘한국 모델’을 분석하며 자국 정부가 본받아야 할 점을 보도한다.

각국 정상들이 자신들도 한국 모델을 따르겠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하고 있다(선언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도 자국 기자들 앞에서 미국이 한국의 진단검사 실적을 넘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한다. 전 세계가 한국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경험은 앞으로 우리의 국가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할 것이다.

칼럼은 시의성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코로나19 사태를 다룬 칼럼이 넘쳐난다. 정부 대응을 놓고 잘못을 추궁하는 내용이 많다. 정부 비판이야 언론의 기본 기능이지만, 가끔은 그 기본 기능의 본래 목적을 잊은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비판에 사용하는 언어도 자못 자극적이다.

최근에는 어느 일간지에 현 시국을 세월호에 빗대어 비판한 칼럼이 등장했다. ‘나라 전체가 세월호’라는 은유(metaphor)를 통해 정부의 ‘무능’을 부각했다. 은유는 낯선 대상을 친숙한 대상으로 환원하여 이해를 돕는 데 유용한 사유 방식이다. 서로 다른 대상에서 비슷해 보이는 점을 찾아 연결함으로써 한 대상의 관점에서 다른 관점을 해석하는 것이다.

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에 따르면, 은유는 인간의 개념체계에 깊게 뿌리박혀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고, 경험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틀짓는다. 이렇게 보면, 은유는 단지 대상의 현재 상태에 대한 해석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대상을 다루는 방식, 앞으로 그 대상이 실제로 전개되는 과정을 지배한다.

즉 우리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은유를 동원하지만, 그 은유가 우리의 현실을 직조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민의 트라우마를 이용한 ‘나라 전체가 세월호’라는 은유는 위험하다. 현 사태를 대하는 우리의 생각, 경험, 행동을 세월호라는 틀에 가두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서구 선진국 사람들과 달리 사재기의 유혹에 빠지지 않은 것은 이 나라가 적어도 국민을 내팽개치지는 않으리라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에서는 그런 신뢰가 불가능하다. 언론의 기본 기능은 정부 비판이지 불안 조성이 아니다.

두 달 째 집에서 자식들 하루 세끼를 해결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어버이들에게, 오늘도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는 생활인들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에 갈 꿈에 부풀어 입학선물로 받은 책가방만 만지작거리는 3월의 어린이들에게, 여전히 악몽 같은 하루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4월의 유가족들에게, 무엇보다 전장에서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뼈와 살을 갈아 하루하루 맞서 싸우는 그 수많은 이들에게 ‘나라 전체가 세월호’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김대운 / 충훈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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